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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 야야

선규백 2007. 9. 4. 13:48


내가 그를 알고 교류하는것이 20여년이 지났다. 그가 거주하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쪽 산악 지역이다. 산세가 험하고 해발 2,500 ~ 2,800m 의 지역이니 높고,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중동에서 쉐이크(Shake)란 우리말로 번역하면 부족의 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반도에서 근대의 국가가 성립되기 전에는 지역별로 분할하여 족장들이 통치하였던 것이다. 현재, 이곳의 사정은 크게 변한 것 없이 족장이 3권으로 갖고 통치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고 있으나 아직도 부족장의 통치권은 대단한 것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이 1980년 중반이니 20여년의 교류를 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반도에는 베드윈(Bedwin) 이란 원주민이 살고 있다. 그 원주민 중 사막에서 유목을 하는 종족은 목초지와 물을 찾아 옮겨 다니는 유목민이고, 산악지역에 사는 원주민은 정착하여 사는 원주민이다. 족장 “야야”는 산악지역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원주민의 족장인 것이다. 그가 지배하는 면적은 사우디아라비아 남쪽의 큰 산악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와 첫 만남은 어렵게, 두려움을 갖고 시작 되었다. 그곳은 경치가 좋고 사우디의 저지대 사막지역과는 다르게 날씨가 서늘하고 비가 종종 내려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해발이 높은 곳이라 침엽수(향나무과 같은)가 나즈막히 자라고 있어 풍경이 대단히 보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그 지역을 보기위해 산악도로를 돌고 돌아 골짜기로 들어갔다. 나를 발견한 그곳을 경계하던 젊은이들이 총을 빼내어 들고 알아듣지 못하는 특유의 베드윈족 아랍어를 하며 완강히 자신의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니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었다. 발길을 돌리어 다음으로 미루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인근 도시에 살고 있는 내 사업 파트너인 사우디인의 인척을 동원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인과 함께 동행 하여 그곳을 찾으니, 일단 말이 통하니 총을 빼어드는 일이 없이 나의 의사를 전할 수 있었다.

“이곳의 경치가 아름다워 골짜기를 구경하고 싶고, 너희들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며, 너희의 풍습을 해치지도 않을 것을 알라 앞에서 말한다.”라고 전하니 족장의 허가를 받겠다고 한다.

한참을 기다리니 젊은 친구의 호위를 받으며 내가 말하는 족장 “야야”가 나타나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인들이 머리에 쓰는 천을 두르고, 중동 사람 특유의 긴 내리다지(원피스) 옷을 입은 준수하게 생기고 위엄이 넘친다) “환영한다.”라는 말과 자신이 안내를 하겠다고 한다.

총을 잡은 젊은 친구들을 물리치고는 골짜기 안내를 한다. 짧은 (실은 몇 마디 할 수 있는) 아랍어로 손짓 발짓 하며 “이곳이 매우 아름답고 평온해 보인다.”등의 말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매우 배타적인 이곳의 원주민들이 일단 손님으로 받아들이면 멀리서 온 가족과 같이 환대를 한다.

이곳에서 묶고 가라고 한다.

안내된 곳은 족장이 거쳐하고 있는 집이다. 산골짜기의 남쪽을 향한 산중턱에 자리 잡은 돌로 쌓아 지은 집이다. 바람을 막고, 양을 보호하고, 낙타 몇 마리와 함께 거쳐를 잡고 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내가 이곳에서 밤을 보낼 수 없다고 하니, 오후 늦은 시간이나 식사를 하고 떠나라 하며 붙잡는다. 그날 저녁을 족장의 가족과 함께 하고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고 달이 휘엉청 밝은 산길을 따라 내려와 시내에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 내가 거주하는 리야드 (Riahh)에서 1,200Km정도의 거리인 그곳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그곳에서 귀하고, 필요한 야채, 과일 옷 등을 VAN 차량에 잔뜩 싣고 찾았다. 물론 내가 그곳에서 기거할 수 있는 담요, 식수, GAS로 조리할 수 있는 버너, 약간의 식품을 실었다.

그곳을 찾으니 족장“야야”는 반갑게 나를 맞이하였다. 가지고 온 선물을 전하였고 내가 이곳이 좋아서 2~3일을 이곳에서 머물겠노라 하니 “너는 나의 가족과 같으니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물론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 라는 것이다.

새벽에 리야드에서 출발해서 이곳에 도착하니 피곤하여 VAN 차량에 숙소를 준비하고 있는데 저녁식사가 준비 됐다는 것이다.

족장 “야야”는 나를 위해 수태하지 않은 암양을 잡아서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수태하지 않은 암양은 육질도 부드럽고 맛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가치도 대단한 것이다. 새끼를 계속 낳아서 양의 숫자를 늘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원주민과 다른 풍습은 아라비아 반도의 원주민은 여자는 초경을 하면 검은 천(아바야)으로 머리를 감싸고 타인에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나, 이곳 산악의 원주민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여자들이 손님 앞에서 음식 접대를 하고 함께 앉아서 식사를 같이 한다. 물론 아바야로 가리는 것도 없다. 족장, 족장의 처들, 아들들, 딸들이 둥그렇게 앉아서 손님인 나와 같이 식사를 한다.

양을 흙속에 넣어 구운 “만디”라 부르는 양고기와 쌀을 찌는것과 같이하여 올리브유와 건포도를 섞어서 다시 볶은것과 같이한 것 외에 간단한 채소와 과일이다. 

아 그리고 이곳에서 “샤이”라 부르는 홍차를 마신다. 양고기의 맛있는 부분을 식구들이 나에게 권한다. 저녁을 먹고 나니 달이 밝은 이 산악의 경치는 또 다른 것을 나에게 보여준다. 달빛이 비추는 안개가 낀 것 같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신비함까지 감돈다. 정적이 감도는 이 산악의 감동은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찌꺼기를 한 번에 쓸어내리는 것 같다.

숙소로 준비한 VAN 차에 들어와 누우니 곤충들이 찌르륵 찌르륵 하며 내는 소리, 밤에 우는 새들의 소리가 적막한 이 골짜기를 흘러내려 한참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니 아직 해가 뜨기 전 여명의 새벽이다. 차에서 내려 큰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긴 숨을 들이쉬고 나니 온 천지가 새들의 지저귐 소리이다. 나무 밑에서는 산닭무리들이 아침 모이를 찾고 있다.

차분히 골자기를 살피니 저 멀리 바위 위에서는 큰 무리의 원숭이 떼가 먹이를 찾으며 이동하고 있다.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등에 업고 바위를 뛰어 건너는 것이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큰 수놈이 (아마도 무리의 대장) 무리를 지휘하며 움직이는 것 같다.

족장 “야야”의 가족들은 그들의 집 근처 넓직한 바위 위에서 족장의 인도 하에 기도를 드리고 있다. 엄숙하고 조용히 드리는 기도가 보기 좋다. 해가 솟기 시작하며 새들의 울음이 잦아든다. 아침식사를 하라고 하여, 저녁과 같이 가족이 둥그렇게 둘러 앉아, 낙타유와 양젖으로 만든 요구르트(이들은 “라반”이라 부른다) 대추야자를 빵과 함께 내어 놓는다. 달콤한 대추야자와 라반으로 식사를 하며 설탕을 듬뿍 넣은 홍차를 내어온다.

중동 사람들이 흔히 먹는 식사이다. 대추야자는 당도가 높아서 칼로리가 높아, 대추야자 두 개와 홍차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것에 야쿠르트까지 겸하면 좋은 아침 식사가 된다. 이곳의 한적함은 도시에 살던 나에게는 할 일 없는 오랜만의 한적함을 한 낯을 즐길 것이다.

이곳의 청소년들은 머리에 꽃을 엮어 월계관처럼 쓰고 다닌다. 이것이 산악지역의 해충을 막아 준다고 한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나니 족장 “야야”는 아들을 시키어 골짜기의 청소년들을 불러 모은다. 바위위에 올라가서 족장의 아들은 두 손을 모아서 그들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내어 골짜기를 따라서 신호를 보낸다. “야~호” 와 같으나 특유의 소리이다. 소리마다의 의미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각 골짜기에서는 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로 전달되는 통신체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골짜기를 타고 들려오는 산울림이 이곳저곳에서 퍼진다.

잠시 후 족장 “야야”가 통치하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머리에 화관을 쓴 젊은이들이다. 족장은 이들을 모아놓고, 맨 먼저 나를 소개하는 듯싶다. “우리의 손님이니 이곳에 있는 동안에  안전을 지켜주고 대접을 잘 하라는 것” 같았다. 젊은이 한사람, 한사람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존경의 표시를 한다. 말을 이해 못하겠으나, 다음은 오늘의 할 일들이나, 경계에 대하여 지시를 하는 것 같다.

일부는 총을 차고 있고, 일부는 칼을 차고 있다. 일단 나는 족장의 손님이니 이곳에서는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곳의 경치를 구경하고 싶어 족장의 아들과 함께 오전을 산악지역 이곳저곳을 찾아  보았다. 천지가 창조될 때 아마 이곳은 이렇게 살라고 신이 만들어 놓은 특별한 지역 같았다.

점심때가 되니 허기가 진다. 나는 간단한 과자와 물 한 병이 있으니, 함께 식사를 하자고 족장아들에게 전하니, 기다리라고 한다.   

나무 밑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산닭 한 마리를 잡아 온다. 산닭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빼어내고 다리를 잘라 젖은 흙으로 싼다. 그리고는 마른 나무를 주워서 흙을 바른 채로 굽기 시작한다.

한 시간 정도는 흙에 쌓은 채 굽더니 흙을 벗겨내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구이가 나온다. 진흙을 두껍게 발라 그 안에서 구운 것이니 고기도 부드럽고 좋은 점심을 하였다.

그 후에 알은 것이나, 절대로 알을 낳는 새로 잡지 않고, 주로 수놈을 골라서 잡는다고 한다니, 이들이 자연에서 증식되는 것을 최대한 보존하며 식량을 해결한다는 지혜가 있는 것이다. 점심을 해결하고 그날은 산악지역 골짜기를  헤매었으니 피곤한 채 족장의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준비한 VAN 차량에서 늦은 낮잠을 자고나니 석양이 진다. 저 멀리 보이는 산악을 타고 붉은 빛으로 물들인 이 골짜기의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이 이 모든 아름다움을 창조 하였다니... 청년들 몇 명이 찾아와 족장에게 무엇인가 하고 있었던 일 들을 보고하는 것 같다.

족장은 석양을 보며 가족들을 불러 모아 기도를 한다. 그 모습이 엄숙해 보이고, 자연히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하는 순간이다.

밤과 낮의 경계인 이 시간 신에게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기도가 끝나니 딸들과 부인은 부산히 움직인다. 저녁을 준비하는 것 같다. 저녁은 낙타 젖과 빵, 양고기, 내가 갖고 온 과일이다. 물론 식사 후 설탕을 듬뿍 넣은 홍차가 따른다. 이곳의 밤은 해발이 높은 지역 이다 보니 날씨가 쌀쌀하여 뼈 속을 쓰며드는 듯한 한기를 느낀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 곳의 밤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이곳이다. 숙소를 준비한 VAN 차량에 돌아와 준비해간 GAS등을 켜고 책장을 넘겨본다. GAS등 불빛을 쫓아 여러 종류의 곤충들이 날아든다. 밤의 정적 속에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단조로운 반복 음을 내고 있다. 조용히 하루를 보낸 것을 감사드리는 기도를 드리고 잠을 청한다.

이제는 족장 “야야”의 가족과는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관계를 갖게 되었다. 기도시간이면 함께 기도하자고 청하곤 한다. 무슬림인 이들이여 5번의 기도도 경건하다.

항상 여명이 트기 시작한 때는 산새들의 지져김에 눈을 뜨게 된다. 아직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새벽이다. 어둠이 서서히 거치며 별이 보이는 산, 산, 산의 은해가 저 멀리 펼쳐져 보인다. 웅장한 자연의 모습에 고개 숙여진다. “알라”에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좋은 하루 되게 하옵소서”


족장 야야는 가족들과 경건한 아침기도를 한다. 낭낭히 골짜기로 퍼지는 “코란” 암송은 뜻을 잘 모르나 신이 이들을 축복 하리라. 신은 위대 하고 위대하다.    

기도를 끝내고 오늘은 식구들이 부산히 움직인다. 아들들이 양 먹이를 찾아 다른 골짜기로 양몰이를 나가는 날이다. 아들들의 음식이 준비되고 양들을 몰기 시작한다. 아들들이 휘파람을 불며 양을 몰아가는 모습은 큰일을 하러 나가는 용사의 모습이다. 양 무리는 700여 마리 정도 된다고 한다. 언덕을 타고 저 멀리 양떼들이 조그마하게 보일 때까지 족장 야야는 눈을 떼지 않는다.


이곳을 나는 좋아하게 되었고, 2~3개월에 한 번씩 찾게 되었다. 물론 1,200km나 되는 먼 거리를 운전을 하여 가는 곳이니 편안한 여행은 아니나, 이곳에서 느끼는 평화로움과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안락함이 이 힘든 것을 상쇄 해주고도 남는 것이다.

족장 야야의 가족과 지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문명의 혜택이 없이 어떻게 살아가는 가도 많이 알게 되었다.


첫째는 무슬림으로의 종교생활이 이들을 지탱해주고, 오랫동안 족장을 중심으로 절대적인 힘을 모아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연의 있는 그대로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이다.

이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양고기와 양유, 낙타유, 그리고  약간의 빵이 주식이다.

이들이 양고기를 보관 하는 방법은 특이하다. 양을 잡으면 제일 먼저 상하기 쉬운 부분부터 먹는다. 내장 부분이나 머리 부분을 먼저 먹고, 머리 부분은 오랫동안 끓여서 수프로 먹는다. 앞 뒷 다리부분은 가죽을 벗긴 후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높은 기온임에도 이곳은 건조하여 끝부분이 말라서 딱딱한 막을 형성하여 며칠을 매달아 놓아도 상하지 않고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이들이 냉장고가 없이 찬물을 마실 수 있는 방법도 특이하다.

집에서는 한국의 큰 독과 같이 흙을 구워서 유약을 칠하지 않은 (화분과 같이) 상태로 된 독을 준비하여 이곳에 물을 부어 두면 물이 조금씩 쓰며 나오며 증발열을 빼앗아 독안에 들어있는 물은 냉장고에 있던 물과 같이 시원하다.

양몰이 나갈 때는 양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를 갖고 간다. 가죽에서 쓰며 나오는 물이 증발열을 빼앗아서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


밤에는 양의 배속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기름덩이를 이용하여 전기나 촛불대신 이용한다.

아기의 요람으로도 양 가죽이 이용된다. 양을 잡아서 네 다리 부분을 끈으로 매어 나무 가지에 매어 달면 훌륭한 아기의 요람이 된다.

이들이 요구르트(라반)를 만들 때는 양가죽 부대가 이용된다. 양유나 낙타유를 양가죽 부대에 넣어서 삼각대를 만들어 걸어놓고 흔들어 훌륭한 요구르트를 만든다.

양 뇌는 깔개로도 쓰고, 잘 엮어서 산악지역의 추운 겨울에 이불과 같이 이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이처럼 양고기, 양가죽을 이용하여 대부분의 필요한 것을 해결한다.


어느 때인가 그곳을 찾았을 때, 아침에 족장 야야는 풀잎을 따서 돌로 찢고 있었다. 뭣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여 한참을 보고 있었더니 아들 하나를 부른다. 7~8살쯤 된 아들 같았다. 이아들은 할레(포경수술)를 한단다. 짓찧은 풀을 고추에 감아 놓는다. 잠시 후 아들을 불러 양 잡던 칼로 고추의 표피를 자른다. 아들은 아무 통증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이 풀 짖찧은 것이 통증을 막아주는 마취제 역할을 한 것 같았다. 피가 흐르니 흰 가루를 뿌려준다. 아마 돌가루나 흙에서 얻은 흰 가루 같다.

피가 멈추고 족장 야야는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한 시간 뒤쯤 저 골짜기 밑에서 그 아들의 울음소리가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같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돌을 짖찧어 마취시킨 마취가 풀린 것 같았다. 골짜기를 타고 짐승과 같이 울부짖는 그 아들의 고통스러워하던 그 소리는 잊을 수가 없다.

아프리카의 동북부 사우디아라비아의 동 남북 등이 여자도 할레를 한다고 한다. 이 지역도 한다고 한다.


이곳의 풍습이 아라비아 반도에 널리 퍼져 살고 있는 유목민인 베드윈 족과 다른 점이 많다.

이들은 정착하여 사는 원주민이다. 여자들이 검은천 (아바야라 부른다)으로 얼굴과 다리 등이 드러내지지 않도록 가리고 다니나 이곳의 여자들은 결혼 전까지는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족장 야야의 가족들과도 많은 친근감을 느끼고 생활도 많이 하였다. 어느날 저녁을 둘러앉아서 먹다가 족장에게 딸 중의 하나를 가리키며 “네 딸이 이쁘다”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중동사람들은 제스쳐를 많이 사용한다. 150여 종의 제스쳐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니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네 딸이 이쁘다.” 라는 제스쳐는 딸을 가리키며 두 손가락을 모아 내 뺨에다 대고 위에서 아래로 스쳐 내리면 된다. 이것이 큰 화근이 될 줄이야 모르고 한 것이다.

족장 야야는 딸을 데리고 리야드로 가라고 한다. 즉, 결혼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은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으니 처를 하나쯤 더 두라는 것이다.

저녁을 끝내고 내가 좋아하는 넓적한 바위위에 앉아 휴식하며, 골짜기에 찾아드는 어둠에 묻혀 있는데, 작은 아들놈이 내가 가리킨 누이를 데리고 나에게 왔다. 누이를 내 옆에 앉히며 내 손을 끌어 “아버지가 허락했으니 누이의 가슴을 만져도 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내가 안 된다고 거부하니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식사 중에도 야야의 딸은 나에게 더더욱 호의를 베푼다. 아침식사 후 족장의 딸은 나에게 다가와 리야드에 가서 내가 낀 반지를 가리키며 자기 것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증표를 얻고 싶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완강히 족장에게 “나는 너의 딸이 이쁘다는것 뿐이고, 나는 너의 딸과 결혼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전형적인 중동의 미인이다. 사슴과 같이 큰 눈망울은 아름답다. 결혼하기 전의 중동미인과 같이 가냘픈 몸매와 적당한 볼륨의 가슴은 매혹적이다. 큰 흠이라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산악지역을 신발을 신지 않고 어려서부터 다녀서 발등이 우리와는 다르게 두배 쯤 두텁고 발가락 다섯 개가 모두 벌어져 있다. 몹시 보기 좋지 않은 모양이다.

족장 야야는 딸과 결혼하는데 한 가지 조건을 말하였다. “네가 무슬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딸과 결혼을 하면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양 300마리와 골짜기 한 자락의 땅을 준다는 것이다. 양 300마리의 가치는 이곳에서 큰 재산임은 물론이고, 나에게 줄 수 있다고 가리키는 땅 또한 대단히 큰 지역이다.

이곳 산악지역의 땅이 큰 가치는 없겠지만 대단히 넓은 지역이다.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야야의 딸들에게는 각별히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일관하였다.


족장 야야를 만난 지 5~6년이 되었다. 종종 인편을 통하여 소식을 듣고 있으나, 늙어가며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과 18살짜리 처녀와 결혼을 또 했다는 것이다.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먼 골짜기들을 내려다보며 위엄을 보이던 족장 야야는 내 가슴속에 있는 영원한 친구이다.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하며, 다시 한 번 이 산악지대를 찾아 때묻지 않은 자연에서 며칠을 보내고 싶다.